올해 봄, 새롭게 눈에 들어온 풍경이 있다.
늘 벚꽃만 기다리다 꽃이 지면 아쉬움만 남았던 봄이었는데, 벚꽃이 지니 진달래가 피었고, 그 뒤를 장미와 이팝나무가 이어받았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어 계절 따라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주변을 다시 바라보니 평범한 하루에서 만나는 자연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런 자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정원'이다.
정원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다.
자연의 질서를 따르면서도 사람의 손길로 정돈된, 일상 속에서 예술과 치유, 그리고 쉼이 공존하는 장소이다.
2025 대한민국 정원여행지도(출처: 산림청)
산림청은 국가, 지방 및 민간정원으로 구분해 전국의 정원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올해 봄, 전국 172개 정원의 정보를 담은 '2025 대한민국 정원여행지도'를 발간해 누구나 쉽게 정원을 찾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도에는 정원의 위치, 운영시간, 소개, 연락처, 사진 등 실용적인 정보를 한눈에 담았다.
☞ '보도자료' 봄나들이 즐길 전국 정원을 한눈에… 2025 대한민국 정원여행 지도 발간
인천 제1호 민간정원 '파인 앤 로즈 정원'
2023년에는 이 지도를 따라 경기도의 지방정원 '세미원'을 찾았었다.
그때의 여운이 오래 남아 올해도 정원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특별히 이번에는 민간정원으로 눈길을 돌렸다.
민간정원은 국가가 아닌 개인이나 단체가 삶의 철학을 담아 오랜 시간 정성스레 가꾸어온 곳이다.
그만큼 독특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건물 뒤로 곧게 솟은 소나무들이 시선을 끈다
5월의 햇살을 가려주는 소나무 그늘
이번에 찾은 정원은 강화도에 위치한 '파인 앤 로즈 정원'이다.
인천 최초이자 유일한 민간정원으로, 강화자연사박물관과 강화역사박물관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름처럼 이곳의 주제는 소나무와 장미다.
길게 뻗은 소나무가 건물을 감싸며 자라고 있었고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아 꽃의 여왕인 장미 역시 꽃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원은 여러 통로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였다.
지형의 경사를 따라 자연스럽게 조성된 정원
보라색 유채꽃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장면
정원을 가득 채운 보라색 꽃에 시선이 머물렀을 때, 마침 정원의 대표님과 마주쳤다.
보랏빛 꽃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의외로 유채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흔히 노란색으로만 알았던 유채가 이렇게 피기도 하다니, 희귀 품종이라고 한다.
5월 중순부터는 보라색 유채꽃이 더 활짝 피어 정원 전체를 물들이고 데이지와 양귀비도 곧 필 것이라고 했다.
'조금 더 늦게 올걸'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피어오르는 순간을 함께하는 지금도 충분히 좋았다.
울타리가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길을 따라 걷는 풍경
하나의 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또 다른 꽃이 피어난다
정원에는 울타리가 없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담장을 허물고 곳곳에 길을 낸 결과였다.
단순한 개방을 넘어 접근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은 모습이었다.
한편, 최근 제정된 '치유관광산업 육성법'과 기존의 '치유농업법', 정원진흥 기본계획에 맞춰 치유 농업과 스마트팜 도입도 준비 중이다.
이야기를 들은 후, 길을 따라 잠시 자연과 호흡하며 거니는 시간을 지녔다.
그리고 조용한 자리에서 책을 펼쳤다.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산림청에서 발표한 현대 산림문학 100선 중에서 두 권을 골랐다.
산림문학은 숲, 나무, 풀 등 산림을 주요 배경이나 주제로 삼은 작품으로, 국민 추천 도서 1039권 중 학계, 출판문화계, 교육계 등 전문가 심사를 거쳐 시집, 아동문학, 수필 소설 등 현대 산림문학 100선이 선정됐다.
현대 산림문학 100선, 자연 속에서 읽기에 더없이 좋았다
내가 고른 책은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여자들의 등산일기'와 실뱅 테송의 수필 '시베리아의 숲에서'이다.
평소 즐겨 읽던 추리소설 작가가 그린 산림문학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시베리아의 숲에서'는 만화 형식의 수필인데, 마흔을 앞두고 은둔자의 삶을 꿈꾸며 6개월 간 시베리아 숲에 들어간 작가의 기록이 담겨 있다.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였다.
책 속의 인물들은 각자 고민을 안고 자연을 찾는다.
결혼, 일, 가정 등 삶의 문제를 자연 앞에 놓고 스스로 해답을 구한다.
국적이나 문화는 달라도, 살아가며 겪는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인생의 무게를 자연 속에서 내려놓고자 하는 마음 역시 만국 공통이었다.
문학은 그 마음을 잇고, 낯선 삶에도 깊이 공감하게 해주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그것이 문학이 가진 힘이다.
☞ (산림청 누리집) 산림문학 안내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인돌도 정원 옆에서 만났다. 발길 닿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정원여행의 묘미!
아름다운 봄날, 산림문학 한 권을 들고 대한민국 정원여행지도를 따라 걸어보자.
자연과 문학이 주는 여유 속에서 진정한 나와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는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