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해를 맞아 대청소를 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서랍, 오랫동안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박스를 꺼내 버리고 정리하길 반복하던 중 학창 시절 일기장을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도 학창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그 시절을 겪으며 심리학과 진학이라는 진로를 정했고, 나름대로 성장해 왔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 일기장 속 나는 유독 더 힘들어 보였다.
우리가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잦은 감정 변화, 우리나라 사회의 교육 환경에 따른 통제와 대인관계 문제, 정보의 발달로 다양한 정보를 제한 없이 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까지 모든 것이 처음인 청소년기에는 말 그대로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교내 상담 센터가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 대부분의 학교에는 교내 상담 센터가 있고, 전용 센터가 없는 경우라도 전문 상담사가 일정 시간 이상 상주하는 등 학생들의 심리 상담 및 지원을 위한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다.
주기적인 안내문과 알림 메시지를 통해 학생과 부모에게도 상담을 위한 정보를 폭넓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궁금해졌다.
학기 중에는 교내 상담 센터와 상담 선생님을 통해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방학 중에는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주말이나 늦은 저녁, 위기 가정 아이들에게 고민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
고민에 대한 답을 찾던 중 대한민국 곳곳에 청소년 상담복지센터가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1388이라는 상담 번호로 더 잘 알려진 청소년 상담복지센터는 어떤 모습일지 직접 센터를 방문해보기로 했다.
내가 방문한 곳은 경기도 수원 종합운동장 근처에 있는 '경기도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였다.
멀리서도 상담복지센터 간판과 홍보 전광판을 통해 1388을 홍보하고 있었기에 굉장히 쉽게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상담복지센터는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2층은 대부분 회의실과 사무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상담이나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찾았다면 1층 센터로 들어가자.
센터에 입장하자마자 안내 데스크와 작은 대기 공간이 반겨줬다.
안내 데스크의 직원은 상담을 위해 방문한 것인지 확인했다.
상담 신청을 위해 직접 방문하거나, 1388 전화로 상담을 예약한 후 방문했을 때는 협의된 일정에 따라 상담이 진행된다.
상담 센터 담당자는 별도의 예약을 진행하지 않고 방문하더라도 상담할 수 있지만, 원활한 지원을 위해 사전에 조율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대기 공간은 차분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줬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영상이 송출되고 있었고, 희망과 격려를 주는 문구가 중간 중간 적혀있던 것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방문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소소한 비품과 간식거리들은 이곳이 청소년을 위해 열린 공간이라고, 편안하게 기다리면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담당 직원의 안내로 상담실을 둘러봤다. 경기도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에는 1층에 총 5개의 상담실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도 몇몇 곳에서 상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부분 상담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에 유독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되는 듯했다.
가장 처음 둘러본 곳은 작업치료실로 어린 내담자나 작업 활동을 동반한 상담이 필요할 경우 이용되는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정말 다양한 장난감과 피규어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해당 상담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반 상담실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편안한 분위기의 상담실 모습이었다.
직접 의자에 앉아보니 푹신한 감촉에 서서히 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자리에 앉으니 문득 청소년 상담인데 정말 비밀 보장이 되는지 궁금해 이곳에서 청소년들이 이야기한 내용이 부모나 학교에 전해지지 않는지 물어봤다.
이에 담당 직원은 "모든 상담은 기본적으로 비밀 보호가 원칙이기 때문에 본인 동의 없이는 어디에도 전해지지 않는다."라며 본인이 동의했거나 생명이 위급한 경우가 아닌 한 어디에도 전달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자리를 옮겨 전화 상담실을 둘러봤다.
예전 1388로 전화를 걸면 어디서 전화를 받을지 궁금했는데, 이번 방문으로 그 해답을 찾았다.
바로 센터 내에 이런 독립적인 전화 상담실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
일반적인 콜센터처럼 많은 상담사가 한 공간에서 전화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독립된 공간에서 전화 상담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전화를 걸어온 청소년 개인에 집중하고, 상담 내용 비밀 보장을 위해 독립된 공간이 필요한 것이 당연한 것 같았다.
담당 직원은 1년 365일 청소년을 위한 전화는 항상 대기 중이라며 전문 상담 선생님이 3교대로 나눠 늦은 저녁과 새벽, 주말과 공휴일까지 전화 상담실에서 청소년을 기다린다고 했다.
"가벼운 고민이라도 누군가가 들어주면 훨씬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담 센터의 마지막 투어는 청소년이 임시로 머무를 수 있는 숙소였다.
상담 시설에 숙소라니 이곳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사실 이곳은 청소년이 생활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가출 혹은 전문 쉼터로의 연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하루 정도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청소년이 위험하게 밖에서 하루를 보내지 않도록 안전한 센터 내부에서 임시로 머물다 가는 쉘터의 느낌이라니.
실제로 보호지로 인도하거나 전문 시설로 연계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이용하는 청소년이 많지는 않다고 하지만, 이런 세세한 것까지 준비해 놓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센터 투어를 마치며 경기도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의 조혜영 경영기획팀장은 청소년 상담복지센터는 언제나 청소년을 위해 열린 공간이라고 말했다.
"힘든 일이 있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을 때는 고민하지 말고 전국의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와 청소년 상담전화 1388의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이며, 전국 센터의 전문가 선생님들이 청소년을 위해 1년 365일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심리학을 전공하며 나 역시 수 차례의 상담 실습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누군가에게 내 고민을 말한다고 무슨 해결이 되겠냐고 생각했었지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의외로 많은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또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와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전국의 상담복지센터와 유관 상담 기관은 청소년을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 혹은 내 주변 친구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센터에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보자.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이정혁 jhlee43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