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에 길을 가다 빨간 우체통을 만나면 옛 기억들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을 보내던 시절 말이다. 나는 늘 우편물을 바로 손에서 놓지 못하고 우체통 문만 여닫곤 했다. 어련히 틀리지 않게 썼을 테고, 잘 도착하려 건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체통 앞에서 몇차례의 확인에 확인을 하곤 했었다. 이제 손편지가 드물어졌지만, 아직도 우체통을 보면 그 아련함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우체통이 달라졌다. 40년 만이다. ‘ECO(에코)우체통’이란 이름으로 편지는 물론, 소포우편물과 폐의약품, 커피캡슐까지 넣을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환경보호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에코(ECO) 우체통’을 도입한다고 최근 밝힌바 있다.
직장인들이 많이 오가는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ECO 우체통’을 만났다. 외관부터 ‘ECO’에 신경을 써 강판으로 제작했다. 기존 섬유강화 플라스틱 재질(FRP)은 저렴하고 부식에는 강하지만 외부충격이 약하고 재활용이 어려워 환경 오염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체통을 정면에서 보면 두 개의 투함구가 보인다. 왼쪽 투함구는 우편· 소포, 오른쪽은 ECO라고 적혀 있다. 어떻게 구분해 넣으면 좋을까. 물론 우체통 하단에도 사용법이 적혀 있다. 그래도 미리 알아두면 편하다.
일단 왼쪽 투함구에는 기존처럼 우편물을 넣게 된다. 또 소포 우편물도 가능하다. 소포 우편물은 우체통 표면에 적힌 QR코드를 이용하거나 우체국 누리집, 우체국 앱에서 소포간편사전접수를 신청해야 한다. 이어 화면에 따라 주소 등을 입력 후 신청하면 가접수 번호가 나온다. 이 번호를 꼭 소포에 적어야 하는 점도 잊지 말자.
투함구를 확장해, 넣을 수 있는 상자 크기도 기존보다 커졌다. 이제 우체국 2호 상자크기(60cm=27cm×18cm×15cm)까지 들어간다. 담당자는 우체국에서 파는 상자를 이용할 경우, 1호, 2호, 2-1호를 투함구에 넣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정말 이런 크기도 가능한가요?”
2-1호는 제법 커 보였다. 잘못 들었나 싶어 재차 물었지만, 가능하다고 했다. 또 우체국 내 무인접수기가 있어 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제법 커다란 상자를 우체통에 넣을 수 있다니 마음에 꼭 든다.
이제 ECO투함구를 알아볼 차례다. ECO투함구에는 폐의약품과 커피캡슐을 넣을 수 있다. 커피캡슐의 경우 현재는 카누 제품만으로 제한하고 있으나 조만간 타 업체 제품도 가능하게 될 거라고 한다. 회수된 폐커피캡슐은 재활용 업체에 보내져 다양하게 쓰인다.
“오늘은 폐의약품과 커피캡슐은 없네요.”
일단 폐의약품을 알아보기 위해 협조를 얻어 수거 시간인 17시까지 기다렸다. 담당자가 ‘ECO 우체통’ 문을 열자 두 군데로 분리된 형태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간 날은 편지만 있었다. 담당자는 편지를 수거해 우체국 내로 들어갔다. 내부를 보니 깔끔하게 유지되도록 잘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버리면 좋을까.
“폐의약품의 경우는 물약을 제외하고 일반 봉투 혹은 전용 회수봉투 등에 넣어 봉한 뒤 봉투 겉면에 ‘폐의약품’이라고 써서 투함해야 한다”고 광화문우체국 서연순 과장(우편물류과)이 말했다. 물약은 흘러나와 오염될 수 있어 제외된다는 점도 알아두자.
“커피캡슐은 원두찌꺼기를 캡슐에서 제거해 알루미늄 캡슐만 전용 회수봉투에 담아 넣습니다. 전용회수봉투는 우체국에 준비돼 있어 그걸 이용하시면 됩니다.”
단, 뚜껑 부분(캡슐 리드지)을 리사이클러(오프너)로 잘 도려내야 한다. 이 리사이클러는 우체국 회수봉투 옆에 놓여 있으며 온라인에서 커피를 구매할 때도 신청가능하다.
물론 폐의약품과 커피캡슐은 ‘ECO 우체통’이 아닌 기존 우체통에도 넣어도 된다.
무엇보다 주의할 점이 있다. “아직 저희 우체통에서는 편지가 오염된 적은 없었지만. 쓰레기나 담배꽁초들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ECO 우체통’은 좀 더 커졌기 때문에 이물질 투함이 우려되거든요. 이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두셨으면 좋겠어요.”
서 과장이 말했다. 담배꽁초나 음료수가 투기 돼 우편물이 훼손되는 경우 ‘우편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다. 또 휴지같은 단순 오물을 투기해도 경범죄 처벌법,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범칙금 및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편물이 훼손될 경우 배달하기 어려운 우편물로 분류돼 다시 발송인에게 돌아가게 되니 그런 아쉬움이 어딨겠는가.
‘ECO 우체통’은 서울시 도입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국민입장에서 이런 ECO 우체통이 많아진다고 하니 반갑다. 또 많은 국민이 취지를 잘 알고 동참해 국민 생활이 편리해지고 자원순환형 우편 서비스가 향상되길 기대한다.
24시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ECO 우체통’. 이제는 우체통이 우편물은 물론 환경보호를 위한 제품을 회수하는 곳이라고 떠올리면 좋겠다. 우체통을 이용하며 이전과는 또 다른 의미깊은 추억을 만들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