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야외활동하기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이맘때쯤 길거리 곳곳을 걸어 다니다 보면 거리공연을 자주 볼 수 있다. 거리공연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서 여는 공연을 뜻한다. 최근에 서울 시내 곳곳에서 길거리 공연을 접할 수 있다. 길거리 공연으로 ‘청춘마이크’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 기획사업으로, 매달 마지막 수요일이 포함된 문화가 있는 날 주간에 지역 곳곳에서 펼쳐진다. 지난 2016년부터 시작했으니 어느덧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청년 예술가들이 청춘마이크를 통해 공연할 기회를 얻었다. 청춘마이크는 단순한 공연 지원을 넘어, 청년 예술가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청춘마이크는 5월부터 11월까지 전국을 수도·강원권, 충청권, 경상권, 전라·제주권 4개 권역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청춘마이크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쉽게도 직관해 본 적은 없었다. 이번에 드디어 청춘마이크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9월 25일(수) 오후 6시부터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청춘마이크 공연이 열렸다. 공연이 열리기 전 마로니에공원에 도착하니 야외공연장 무대에서 공연팀의 총연습이 한창이었다. 총연습이지만 온 힘을 다해서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 오늘은 신지훈 트리오, 차세대, 토리밴드, 이한결 트리오 총 4팀이 출연해서 공연을 펼쳤다.
오후 6시 공연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직 낮이었다.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어 있었다. 일찌감치 객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이 많았다. 무대에 첫 출연팀인 신지훈 트리오가 등장하자 무대 주변으로 더 많은 관객이 모여들었다. 사회자가 무대에서 말을 이어가자 학생들의 커다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사회자가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면서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어보자, 여러 학생이 큰 목소리로 “울산요”라고 외쳤다. 무대의 출연자들을 보면서 환호하는 학생들 덕분에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신지훈 트리오는 메인스트림 재즈와 국악에 모티브를 둔 크로스오버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장르를 연주하는 3인조 그룹이다. ‘아리랑’, ‘풍년가’, ‘태평가’ 등 우리의 민요를 재해석한 곡을 연주했다. 차세대는 흘러간 음악과 서브컬처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모여 만들어진 4인조 그룹사운드다. ‘씨티코믹스’, ‘무슈킴’, ‘거짓말’ 등을 열창했다. 차세대의 보컬을 맡은 이찬희가 객석으로 넘어와 열정적으로 하모니카 즉흥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관객들도 시선을 집중했다. 토리밴드는 4인조 인디 록 밴드로 ‘자아’를 주제로 노래하고 있다. ‘파랗기만 한 봄’, ‘목소리’, ‘필름’ 등을 열창했다.
이한결 트리오는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하모니카 연주자 이한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하모니카, 피아노, 퍼커션 3인조 연주팀이다. 일상 속에서 많이 들어봤을 법한 가요, 팝, OST 등의 대중음악들로만 공연을 꾸려 단순 커버가 아닌 즉흥 연주적 편곡을 통하여 원곡의 강점을 살려 연주하는 전문 연주팀이다. Liber Tango, 인생의 회전목마, Hit the road jack 등을 연주했다. 리더 이한결의 하모니카 연주는 진한 여운을 남겨주면서 울려 퍼졌다.
4팀에게 주어진 미션곡이 있었다. 모든 출연진이 각 팀의 개성에 맞게 편곡 또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올해 수도강원권의 주제곡으로, <지금 펼쳐지는 청춘들의 색과 빛>이라는 주제를 반영한 곡이다. 미션곡이 출연하는 팀의 성격에 따라 달리 편곡되어서 미션곡을 감상하는 묘미도 있었다.
공연의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점차 어두워졌다. 그러면서 객석의 둥근 의자가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가을이 온 듯 서늘한 바람에 실려 무대의 음악이 멀리 퍼져가는 것 같았다. 마로니에공원을 오가는 행인들이 음악 소리를 듣고 점점 모여들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늦은 시각에도 얼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연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 아쉬워했다. 공연을 끝까지 관람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시민을 인터뷰했다.
이정하(63세), 이마리아(57세) 씨는 고모를 모시고 대학로에 연극을 관람하러 왔다가 음악 소리에 이끌려서 공연을 관람했단다. 이게 거리공연의 매력이다. 실내 공연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거리공연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볼 게 아니었어요. 출연팀들의 실력이 정말 최고예요”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청춘마이크가 청년예술가의 거리공연으로 시민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라고 하자, 이정하 씨는 “그렇다면 이런 공연이 널리 홍보되어서 더 많은 사람이 구경한다면 좋겠어요. 우리가 청년 예술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공연을 즐겁게 관람하는 것일 텐데요. 우리 같은 시니어도 청춘마이크 공연 일정을 쉽게 접할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소감을 밝힌다.
이마리아 씨는 “마지막 하모니카 연주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우리 어릴 적만 해도 하모니카를 자주 불었거든요. 하모니카 연주곡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성을 일깨워줬어요. 거리공연인 만큼 외국인들도 지나가다가 공연을 관람할 텐데요. 그래서 우리의 전통음악을 그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국악을 많이 들려주길 바랍니다”라고 요청한다. 이러한 의견을 받아 주관사 측에 확인해보니, 청춘마이크에는 밴드나 연주팀 외에도 국악, 퍼포먼스,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장소에 따라 출연팀이 정해진다고 한다.
정릉에 거주하는 부부 고동수(68세), 김미연(66세)씨는 가을을 맞아서 날씨가 선선해져서 모처럼 대학로에 나왔단다. 그러다 공연 소식을 접하곤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을 즐겼다고 했다. 고동수 씨는 “음악을 좋아해서 끝까지 앉아 있었어요. 청년 취향의 곡들이 많았는데 이곳 대학로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긴 했어요. 그런데 거리공연인 만큼 우리처럼 나이가 지긋한 관객들을 위한 곡들도 중간에 연주하길 바라요. 청춘마이크 공연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어요. 노년층을 위해서도 공연 일정을 홍보해 주신다면 좋겠어요”라고 당부한다.
공연이 끝난 후 이한결 트리오를 만나서 인터뷰했다.
하모니카 연주자 이한결(32세)씨를 중심으로 피아노 송국화(32세), 퍼커션 박진휘(34세) 3인으로 구성된 연주팀이다. 작년 4월부터 이한결 트리오를 결성해서 청춘마이크 사업에 지원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청춘마이크 사업의 수혜자로 공연하고 있다. 한 달에 한두 번 공연하고 있다.
이한결 씨는 지인의 소개로 청춘마이크를 알게 되었다. 출연료를 받고 거리공연을 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껴서 지원했고, 2019년부터 피아노 연주자와 듀오로 청춘마이크 공연을 했다. 재작년에 연주팀이 해체되면서 작년부터 송국화, 박진휘 씨와 이한결 트리오를 결성해서 청춘마이크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Q) 청춘마이크 사업에 선정되면 어떤 혜택이 있는 건가요?
이한결) 연주자들에게 공연 섭외가 들어오면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비가 오거나 해서 공연이 취소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예정된 공연 자체가 무산되어서 출연료를 못 받거든요. 연주자는 그냥 공연으로 일정을 비워둔 건데 정말 아쉽죠. 청춘마이크 사업은 기상 상태와 상관없이 공연 출연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안정적입니다. 그게 청춘마이크 사업의 가장 큰 이점인 것 같아요. 또 청춘마이크 공연을 하면서 대중들 앞에서 최신곡을 연주해 보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어요. 길거리 공연이어서 남녀노소 다양한 분들이 공연을 구경하러 오고, 그분들의 반응을 바로 살펴볼 수 있어서 연주자가 실력을 펼치면서 동시에 경험을 쌓기에 좋은 무대입니다.
Q) 2019년부터 청춘마이크 공연을 해왔으니 6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경력에 도움이 되었나요?
이한결) 청춘마이크 공연 햇수가 늘어날수록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어요. 청춘마이크 사업이 알려지면서 많은 청년 예술가들이 지원하기 때문인 거죠. 특히 수도권 권역은 더 경쟁률이 치열해요. 예술가들 사이에서 청춘마이크 공연한다고 하면 실력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요.
Q) 청춘마이크는 거리공연입니다. 실내 공연과 차이가 있을까요?
이한결) 거리공연은 날씨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편이에요. 야외니까 실내보다 연주 소리가 더 커진다는 것, 연주하면서 모니터를 보는 것이 불편하다는 점 이외엔 실내 공연과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이한결 트리오를 결성할 당시 최소한의 악기 편성으로 최대의 소리를 끌어낼 수 있는 연주팀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 청춘마이크에서 즐겁게 공연하고 있어요.
Q) 청춘마이크 공연이 월 1~2회 정도라니까 수입 면에선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충당하는 건가요?
이한결) 청년 예술가로서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는 점 때문에 청춘마이크에 선정되어야 하고요. 저희 셋 다 프리랜서로 연주자나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각자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청춘마이크 공연 일정이 확정되면 모이죠.
Q) 예술 업계는 고정적인 수입을 얻기가 힘든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도 예술을 하시는 이유를 세 분이 각각 말해 주신다면?
이한결)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결심했어요. 제가 가진 재능 중에서 가장 승부를 걸만한 게 연주인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도 딱히 반대가 없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예술을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9살부터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했어요. 당시 아버지가 갖고 계신 낡은 하모니카가 있었어요. 제가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서 하모니카 강사 초빙해서 레슨을 했어요. 하모니카 연주 레슨을 받고 숙제를 열심히 했어요. 선생님이 하모니카 연주하는 재능을 알아봐 주시고 계속 연주하라고 권유하셨어요. 대학에서 하모니카를 전공했어요.
송국화) 저는 레슨도 하면서 작곡도 해요. 주로 영화 음악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동안 제가 다양하게 활동해 온 중심에는 음악이 있었어요. 작곡을 전공하려면 기본 악기로 피아노를 연주해야 해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게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박진휘) 저는 어렸을 때 교회에서 드럼을 치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접했고,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연주와 레슨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Q) 청춘마이크는 청춘마이크는 청년예술가의 공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도전하려는 청년 예술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알려줄래요?
이한결) 청춘마이크 사업은 청년 예술가에게 공연할 기회를 주는 한편 대중에게 문화예술을 누릴 기회를 주는 사업이죠. 대중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구상해서 지원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예술에 심취하기보다 대중 관점에서 무엇이 더 재미있을까를 고심하는 거죠. 저희는 무슨 음악을 하는 팀이고, 연주할 레퍼토리가 어떤 게 있는지를 잘 소개했던 것 같아요. 공연팀이 가진 특색과 대중에게 어떻게 어필할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서술했어요.
Q) 거리공연이라서 관객이 고정적이지 않아요. 중간에 자리를 뜨는 관객들도 있어요. 공연할 때 신경이 쓰일 텐데요?
이한결) 관객들이 고정적이지 않아도 관객이 아예 없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아요. 객석이 있는데 관객이 한 사람도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보다 사람들이 오가면서 공연을 구경해 주시는 게 낫겠죠.
Q) 공연을 구경하는 관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을까요?
이한결) 공연장이나 시간대를 따져서 선곡합니다. 늘 선곡이 고민입니다. 공연을 즐기는 분들에게 선곡을 고민하고 연주한다는 거를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기에 공연을 재미있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아주 가끔 갑자기 무대에 올라오시는 분이 있으신데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하모니카를 연주하니깐 하모니카를 들고 무대에 올라오는 어르신이 있었어요.
Q) 청춘마이크 사업 관련해서 당부하고 싶은 게 있을까요?
이한결) 청춘마이크가 오래 지속되어 온 공연 지원사업으로, 공연 횟수도 많은 편이에요. 제가 알기론 지금 청춘마이크, 실버마이크가 있는데, 그 중간을 아우르는 중장년마이크가 없어요. 그렇다면 저희가 중장년층이 되었을 때 지금처럼 공연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송국화) 저는 청춘마이크로 공연을 처음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작곡가로 지내면서 작업실에만 있어서 대중과 소통했던 경험이 거의 없어요. 청춘마이크를 통해서 공연하면서 경험하게 된 일들이 좋았어요. 그런데 작년보다 올해 공연 횟수가 줄고 공연 무대도 좁아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박진휘) 청춘마이크 사업이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서 공연하는 것도 있는 만큼 청춘마이크가 널리 홍보되길 바랍니다. 문화소외지역의 경우 청춘마이크 소식을 접하지 못할 수도 있어서 더욱더 홍보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청춘마이크는 지역과 일상에서 누리는 청년 예술가들의 거리공연으로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지역 청년 예술가들의 성장을 도모하는 사업이다. 문화환경 취약지역 및 문화지구를 우선 지원함으로써 국민의 보편적 문화 누림 환경을 조성하고, 다양한 장르의 수준 높은 거리공연 추진으로 문화 향유 접근성 및 만족도를 높이고자 한다. 또한 지역 청년 예술가에게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활동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올해 전국을 수도·강원권, 충청권, 경상권, 전라·제주권 총 4개 권역으로 나눠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예술가들에겐 그들의 작품을 알리는 공간이 필요하다. 미술가라면 전시장이, 음악가라면 무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인지도가 높은 예술가라면 그 명성만으로도 수많은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하지만 이제 막 예술 업계에 발을 들여놓는 신인이나 청년 예술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공연할 공간을 대여하기도 어렵겠지만, 공간이 마련되었다고 해도 그들의 작품을 보러 오는 관객이 적다. 그렇기에 청춘마이크 사업을 통해 그들이 펼치는 길거리 공연이야말로 무대와 관객 두 가지 측면에서의 고충을 해소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두고 일석이조라고 한다. 청춘마이크가 펼치는 공연이 널리 알려져서 많은 국민이 청년 예술가의 공연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